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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u's Novel

Karu's Novel #19: 사랑과 미래 (2)

by 카루 (Rolling Ress)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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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 본 글은 Karu's Notes의 <고3의 연애>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KN18과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KN18과 연계됩니다.


D-25.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수능. 어쩌면 인생 최대의 시험.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수능을 앞두고, 일반적으로는 가정학습을 써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교장선생님의 불허로 인해 가정학습을 쓸 수 없었다. 대신 그만큼 징검다리 휴일마다 많은 재량휴업이 있었고, 수능이 끝나면 가정학습을 모두 써서 학교에 나와도 되지 않기에 일부러 불허를 한 듯 하다. 반발하는 학생은 딱히 없었다.

학교에 나오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나마 옆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는 게 위안이다. 10월 모의고사를 본 후로 자리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대로 아마 자리가 유지될 모양이다. 적어도 수능 때까진 옆에서 계속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고 해야겠다.

수능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시기 고3들에겐 딜레마가 생기는 시점이다. 수능은 곧 우리의 미래다. 수능 공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에 시간을 쏟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면 어떨까. 연애는 필연적으로 시간을 갉아먹는다. 결국 수능에 쏟을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미래를 내어 주는 꼴이다.

상대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수능을 앞둔 고3에게 연애를 시작한다는 건 분명 벅찬 일이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까지 생기고, 자칫 수능 전에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능 이후에 사귀는 것도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 수능이 끝나면 모두가 가정학습을 쓴다. 간혹 기말고사를 수능 이후에 보는 학교들도 있지만, 우리는 중간고사로 성적 처리가 끝났다. 데이트를 할 시간은 벌 수 있어도, 교내연애의 풋풋함은 누릴 수가 없다. 무엇보다, 시한부 연애가 된다. 상대는 수도권인데 나는 비수도권 대학을 간다면, 어쩔 수 없이 찢어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스토리들을 빠짐없이 챙겨본다. 난데없이 항공샷을 찍는 병맛스러움을 발휘할 때면 오히려 귀여워 보일 때도 있다.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지. 그리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색하게 사이가 끝나느니, 차라리 졸업할 때까지 모르는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관계가 더 나빠지진 않겠지.

'주고 오자.'

매점에서 포카리 한 캔을 사왔다.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 나가기 전에 슬쩍 그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아무도 몰래. 체육시간이 끝난 뒤 교실에 돌아왔을 때, 너는 놀란 듯한 눈치였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캔을 따서 조금씩 마셨다. 곁눈질로 슬쩍 쳐다봤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옆에서 지켜보고, 뒤에서 응원해주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다섯 쌍이 넘던 교내 커플도 모두 찢어졌다. 마치 평생 갈 듯이 꽁냥대던 커플들도, 교내에서 눈치없게 스킨십을 하면서 나같은 모태솔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커플들도 헤어졌다. 한순간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 피해다니고, 뒤에서 욕을 하고. 남자들끼리는 남자애 편을 들고, 여자들끼리는 여자애 편을 들었다. 이게 제일 문제다. 제3자는 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왕은 충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탕발린 말만 하는 간신들을 더 좋아한다. 연애 문제에 있어선 자신의 문제를 듣고 싶지 않아한다.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러니 친구들도 그걸 알고, 듣는 사람에게만 유리한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이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국 다음 연애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갈 것이 뻔하니까.

그래도 뭐 내 연애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내가 신경쓸 필요가 있나 싶다.


"그래도 지금 연애하긴 너무 늦지 않아?"

"에이, 그래도 너한테 관심 있는 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너네가 준 거 아니야?"

"난 아니야."

"나도."

"뭐지? 다른 애가 줬나?"

"너 친구 없잖아."

"이새끼가...!"

복도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정말 친한 상대가 아니라면 말을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남자애들 사이에선 '말 못하는 벙어리새끼'라는 멸칭이 나돌았을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욕을 먹는 게 싫다. 그렇다고 이걸 말리다간 괜히 피곤한 일에 말려들 게 불 보듯 뻔하다.

"뭐지...? 진짜 누가 준 거지?"

"아 맞다니까! 분명 누가 너 좋아하는 거임."

"개소리야.."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물리학 수능완성을 펴고 문제를 푼다. 퍼텐셜 에너지, p형 반도체, ... 분명 작년에 배웠던 내용들인데, 국영수만 하다보니 개념을 잊었다. 문제는 풀 수 있는데 단어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개념을 공부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문제를 더 푸는 게 맞을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 와중에 너는 내 머릿속에서 나가질 않고 있다.

어쩌다가 나에게 말 한마디라도 걸어주면 나는 속으로 좋아 죽는다. 아주.

이제는 누구에게도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당사자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도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괜히 상대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응원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다. 혹여나 내가 너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너를 망치게 되는 건 싫다. 난 책임을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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