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aru's Novel

Karu's Novel #18: 사랑과 미래 (1)

by 카루 (Rolling Ress) 2022. 10. 21.
반응형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 (구) KN18과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KN 19와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별이 남긴 상처는 남겨진 상대를 초라하게 만든다.

「난 아직 너를 좋아해.」

분명 우리는 남이다.

「너한테 했던 얘기 잊지 않았어. 전부 다.」

그렇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너와 다시 함께할 날만을 기다릴 테니까.」

떨리는 손으로 연필을 잡고, 편지를 써내려 간다. 우리는 헤어졌다. 2년동안 사귀었고, 수능을 앞둔 여름방학에 헤어졌다. 싸웠던 것도 아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던 것도 아니다.

"넌 내가 싫어?"

"그런 건 아니야."

"내 곁에 남아줄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왜..."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헤어지자는 거야."

"어째서..."

이유도 알지 못하는 채로 헤어졌다. 마지막 키스. 대답을 끝마친 여자친구는 내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포개었다. 분명 따뜻했다. 그렇지만 마음까지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사랑이 담긴 키스가 아니다. 마치 마피아들이 키스를 하듯, 이건 무언가 다른 뜻이 담긴 키스였던 걸까. 벙찐 나를 두고 여자친구는 혼자 저 멀리 가버렸다. 이제는 내가 따라갈 사이가 아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난 너를 붙잡지 않았어. 너는 항상 나에게 그랬지.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넌 나에게 신뢰를 주었던 사람이야.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혹시라도, 정말 만에하나 혹시라도,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 날이 온다면, 굳이 잡지 않겠다고. 그건 그것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입술을 꽉 깨물고 계속해서 편지를 써 내려갔다.

「살다보면,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서는 연애와 미래를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이 생겨. 원하든 원치 않든, 나와 함께 하는 거랑 너의 미래를 두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거야. 너도 아마 그런 순간이 왔으리라 생각해.」

울고 있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분한 것도 아니다. 서운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니었잖아. 너는 누구보다 나에게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고, 내가 항상 존경했던 사람이야. 너도 나를 믿음직한 친구로 봐줬었지.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것 때문에라도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

그래서 한편으론 더 아쉬워. 그랬던 관계가 한순간에 끝나버린 거니까. 난 네가 내 이냉의 방향이자 목표 그 자체였는데, 네가 사라지니까 무섭고 불안하더라고. 특히, 네가 나를 네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릴까봐 정말 무서웠어. 다시는 못 볼까봐.」

재회에 관련된 글을 보면, 이별 후에 완전히 연이 끊기지 않고 친구로 남아있었을 때 재결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다.

"세아 얼굴을 못 보겠어."

"왜? 걔는 딱히 너 싫어하는 것 같지 않던데."

"아니.. 싫어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야. 뭐랄까. 나랑 사귀었던 세아랑 지금의 세아는 다른데, 자꾸 겹쳐 보여."

"아..."

「서운하거나 분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어찌저찌 너를 잊으려고 했는데, 못 잊겠더라고.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어. 나도 빨리 잊기를 바랐는데. 이별이 처음이라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왜 무기력한지도 모르겠고...」

편지가 점점 글씨로 채워진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있어?"

"죽였어."

"뭐?"

"기억 속에서 죽였어. 나랑 예쁘게 사귀었던 세아는 이미 죽었다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 좋은 추억을 함께 한 세아가 있는 거고, 지금 저기 있는 건 그냥 강세아고. 내가 모르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니?"

마음 속에서 울컥한 느낌이 밀려왔다.

「이별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짊어졌으면 했어. 아까도 살짝 말하긴 했는데, 난 내가 마음이 허전한 게 연인으로서의 너를 잃어서인지, 아니면 친구로서의 너마저 잃어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영원한 건 없다지만 너랑은 정말 오래 가고 싶었는데, 너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니까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어. 그때도 무덤덤한 척했지만, 아예 그냥 멘붕이 와서 아무 것도 못 했던 걸지도 몰라.

너에게 상처 받는 게 이제 끝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분명히 네가 나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는 건 아닐텐데, 왜 계속 네가 하는 행동들이 서운하고 그런 건지. 언제부턴가 너에게서도 여유가 없어보이더라고. 너와 함께 했던 첫 한 달, 그리고 마지막 한 달. 너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해 있었어.」

세아는 나보다 많은 면에서 뛰어나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 관계도 좋고,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나는 한없이 초라하다. 성적도 그저 그런 수준이고, 친구도 많지 않고, 무엇 하나 딱히 잘하는 게 없다. 그런 세아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열등감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고르고 마저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난 네가 나에게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몰라.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헤어진 이상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다만,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그냥 나에게 말해주길 원했어. 해결책을 제시해줄 순 없더라도, 너의 생각과 고민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으니까.

연애라는 건 그런 거야. 나의 짝을 만나서, 나와 짝의 정신과 육체를 섞고, 서로 동화되면서 같이 발전하는 거. 그런데 난 네가 나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있었어도 몰랐을 거야. 표현하질 않는데, 어떻게 알겠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힘든 일을 너 혼자 끌고 가지 않았으면 해. 인생은 너 혼자 끙끙대면서 앓기엔 너무 가혹하니까.

내가 너의 인생에서 함께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건 내 욕심이겠지.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이젠 모르겠지만.」

편지를 쓰고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각을 살려 반듯하게 접었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맑은 밤공기를 마셨다. 유난히 밝은 달이 눈에 들어온다.

"꼭, 전해지길."

힘을 실어 멀리 날렸다. 바람을 타고 편지가 건물들 사이로 멀리 날아갔다.

반응형

'Karu's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Karu's Novel #19: 사랑과 미래 (2)  (0) 2022.10.21
Karu's Novel #17: 눈 오는 날  (0) 2022.09.27
Karu's Novel #16: 관찰적 사랑  (0) 2022.08.27
Karu's Novel #15: 마음의 문  (0) 2022.08.04
Karu's Novel #14: 맹점  (0) 2022.07.16


같이 보면 좋은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