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aru's Novel

Karu's Novel #17: 눈 오는 날

by 카루 (Rolling Ress) 2022. 9. 27.
반응형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 본 글은 카루의 꿈(9/4)을 기반으로 작성된 소설임을 밝힙니다.

* 사실과는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그래서... 일단 전달사항은 여기까지. 다들 귀갓길 조심하고, 내일 늦지 말고. 눈 오는데 조심해서 다녀요."

"감사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종례를 마쳤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바라봤다. 창틀에서 찬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수능도 끝나고, 수시 발표도 모두 끝난 우리에게 학교는 그저 시간만 때우는 곳이 되어버렸다.

『오늘 하늘 완전 예쁘다!』

예은이에게 말이라도 걸어볼 겸 카톡을 남겼다.

『그러게』

답장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폰을 넣어두고 6반으로 갔다. 빨리 가서 말이라도 붙여봐야지.

"애들 벌써 다 갔나보네?"

"응. 다들 나갔어."

왠일로 교복을 입고 있다. 오늘따라 너는 유난히 더 하얗게 보인다. 예쁘다.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야?"

"입시 끝났으니까 이제 신나게 놀아야지."

지난 주에 수능 성적표가 날아왔다. 수시로 가는 입장에서는 최저 등급만 맞추면 성적표는 쓸모가 없다. 어제 6개 대학 수시 합격 결과가 모두 발표되었다. 우연일까. 나랑 예은이는 같은 학교에 가기로 했다. 비록 같은 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계열이라 겹강은 많을 수도 있겠다.

"우리 대학 가서도 볼 수 있겠네."

"응. 왠지 캠퍼스에서 만나면 재밌을 것 같아."

"그러게. 대학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예은이의 뒤 책상에 걸터 앉았다. 너에게서 나는 향이 좋다. 구름 속을 걷는 듯한 향에 빠진다. 슬쩍 예은이의 목을 뒤에서 감싸 안는다.

"또 시작이네."

"몰라..."

"으휴. 봐줄게."

붉은 빛이 도는 밤색 머리. 엉키지 않고 허리까지 곧게 뻗은 긴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부터 손끝까지 새하얀 피부. 하얗다. 너무 하얘서 투명해 보일 정도다. 너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줬으면 했다.

"나 사실 걱정 많이 했어."

"왜?"

"그냥.. 너는 공부도 잘하고, 모고도 잘 보는데 나는 성적이 안 나와서. 넌 항상 내 우상이었거든. 특히 지난번에 과기원 지원했다는 얘기 들었을 때는 놀랐었어. 보면 볼수록 넌 나와 많이 다르구나 싶었고..."

예은이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사실 이럴 때는 답을 뭐라고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전학 가고 싶었거든.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일반고에서 내신 따다 보면 여기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

"그래도 여기 남길 잘한 것 같아. 그리고 네가 곁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었어. 진심으로, 고마워."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너랑 함께해서 좋았어."

"우리 헤어질 거 아니잖아? 대학 가서도 볼 텐데."

"그건 그렇지."

예은이가 배시시 웃어준다.

"예은아."

"왜?"

"잠깐 나갈까?"

예은이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 밖을 나와 언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춥다..."

"손 줘봐."

"..."

"많이 차네."

예은이의 손을 잡고 내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잠깐 멈춰볼래?"

예은이를 불러 세웠다. 하늘에선 흰 눈이 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뿌옇게 되어 있어서 먼 거리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예은이를 바라보기엔 충분했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서의 너는 괜히 더 예뻐 보였다.

"쭉 말하고 싶었어. 네가 지금까지 나에게 해줬던 말들. 항상 나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고 격려해줬던 거. 다 기억하고 있고, 정말 고맙게 생각해. 난 그렇게 날 챙겨주는 사람이 좋거든. 그동안 네가 신경 쓰일까봐 말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어서."

급발진이라도 하듯 말이 멈추지 않았다. 숨을 잠깐 참고 말을 이어갔다.

"나 네가 정말 좋아."

이판사판이다. 태어나서 고백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쏟아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푸흡..."

예은이는 대답 없이 조용히 웃었다.

"아, 아깝다."

"뭐가?"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

"나도 너 좋아한다고."

예은이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장갑을 벗고 볼을 살짝 쓰다듬어줬다. 차갑다.

"예은아."

"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의 눈빛이 통하던 그 때. 우리 둘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를 올려다보는 예은이의 눈은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은이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전혀 춥지 않았다. 머리 위로 눈이 조금씩 쌓여 갔다. 머리를 털어주자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충동적으로 볼에 뽀뽀를 해버렸다.

"빨라..."

"미안. 못 참았어."

"너 일부러 그랬지."

"들켰네."

해가 다시 비춘다. 눈을 맞으면서 언덕을 계속 내려갔다.


"모카라떼 따뜻한 거 한 잔이랑... 예은아. 너는 뭐 마실래?"

"나 망고라떼."

"망고... 어? 그런 음식이 있어?"

"네, 후르츠 메뉴 보시면 이쪽에 메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앗 네..."

따뜻한 망고라떼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창피함은 덤이다.

"예은아. 그... 주문 대신 좀 해줘...나 모카라떼 말고 민트초코라떼로 바꿔서..."

"풉. 알았어. 자리나 맡아놔."

꼬리 내려간 강아지처럼 조용히 카운터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민초랑 망고로 주세요. 계산은 이걸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메뉴 준비 되면 번호 불러드리겠습니다."

계산을 마친 예은이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망고라떼도 모르는 바보래요."

"우이씨... 나 여기 처음이란 말이야. 아니 근데 여긴 무슨 메뉴가 이렇게 특이해? 수박라떼는 또 뭐야.. 청포도라떼? 아주 그냥 별걸 다 라떼로 만드네. 왜, 김치라떼도 만들어보지."

"너도 만만치 않잖아. 후배들한테 라떼 선배로 유명하다며. 꼰대짓해서."

"아니 그건 우리 동아리 애들이 나 억까하는 거라고요..."

우리 학교의 유일한 미디어 동아리, 영상백도. 학술탐구를 하는 다른 동아리와는 다르게 사진이나 영상을 주제로 활동하는 동아리다. 나는 영상을 주로 맡았다. 예은이는 입학홍보부 부장이었는데, 아마 지난번에 콜라보 활동할 때 얘기를 전해들은 것 같다. 그리고 나 그렇게 후배들한테 꼰대짓 안 하는데...

"124번, 민트초코라떼랑 망고라떼 나왔습니다."

"어, 나왔나 보다. 내가 가져올게."

예은이는 항상 나보다 한 발 빠르다. 자주 와봤던 걸까, 아니면 그냥 행동이 빠른 걸까.

"따뜻하다."

"그러게."

언덕 아래 숨겨진 장소, 숨겨진 카페. 동네 주민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한적하다. 지금도 애매한 시간 덕분에 우리 둘만 있다.

'귀엽게 마신다...'

양손으로 컵을 잡고 호로록 마시는 예은이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내 여자친구라고?'

예은이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봤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안 춥지?"

"응. 근데 예은아, 넌 여기 자주 와봤어?"

"아니? 나 오늘 처음 온 건데."

"어 진짜? 왠지 자주 와봤을 줄 알았는데."

"저기 커플만 입장 가능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 진짜?"

"응. 여럿이서 오는 것도 안 되고, 혼자서 오는 것도 안 돼. 무조건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씩 와야 들어갈 수 있어."

왠지 사람이 없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장사가 되나...

"졸업하기 전에 이 카페 꼭 와보고 싶었는데, 너랑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솔직히 지금 굉장히 두근거려."

"진짜 솔직하네."

"너한테니까."

손을 맞잡은 채로 다시 언덕 너머로 돌아갔다.

반응형

'Karu's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Karu's Novel #19: 사랑과 미래 (2)  (0) 2022.10.21
Karu's Novel #18: 사랑과 미래 (1)  (0) 2022.10.21
Karu's Novel #16: 관찰적 사랑  (0) 2022.08.27
Karu's Novel #15: 마음의 문  (0) 2022.08.04
Karu's Novel #14: 맹점  (0) 2022.07.16


같이 보면 좋은 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