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익숙함이란 참 무섭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니까요. 사람에겐 항상 환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자극이 없다면 어느새 기존 자극에 무뎌지고, 그 자극들은 이내 자극조차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더 강하게, 더 짜릿하게, 더 아프게 우리를 자극해야 그새 우리 몸을 관통하던 자극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죠. 우리는 이런 익숙함에 사로잡혀 이미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고**. 중학교 때 배웠던 한문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문장입니다. 이미 마음이 떠나갔는데, 과연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일까요.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오늘, 10월 20일 수요일, 전국에서 급식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서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이 발생했는데요, 이에 돌봄/급식/교무행정/청소/학교스포츠/사서 등 전 직종에서 파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고양국제고도 오늘은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급식실이 아예 운영을 하지 않았어요.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아시겠지만, 고양국제고는 전교생 기숙사 학교죠. 즉, 삼시세끼를 모두 학교에서 주는 급식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라면? 배달음식? 교칙 위반이에요. 하지 마세요. 어쨌든, 기숙사학교 학생이라면 꼭 필요한 급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학생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마 선생님들께서도 꽤 힘든 상황이시지 않을까 싶어요.
파업이 취소되지 않자, 학교 측에서는 사전에 대체 급식 관련 안내를 해왔습니다. 아침은 비비고 죽, 점심은 한솥도시락, 저녁은 샌드위치. 솔직하게 말할게요. 초라합니다. 이걸 먹고 과연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글쎄요. 어찌저찌 버티긴 했는데 만족스러운 식사라고는 감히 말을 못하겠네요.
사실, 이 포스팅을 딱히 학교에서 달가워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올리겠습니다. 이 날도 분명 우리의 역사이고, 상처이며, 다신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에 깊은 흉터가 남아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루빨리 그 흉터를 메꾸어줬으면 하네요. 모두가 피해받지 않도록.
아침 식사입니다. 중탕한 인스턴트 죽, 봉지에 담긴 치즈케이크, 포도주스. 단촐합니다. 제 개인적인 불만으로, 저는 좀 인스턴트 죽에 PTSD가 있어요. 음... 사실 제가 속이 뒤집어지거나 아침에 울렁거려서 밥을 못 먹을 때 항상 저런 죽으로 아침을 떼웠거든요.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따뜻하게 데워진 거고, 저는 그냥 찬 죽을 걍 퍼먹었다는 거. 딱히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어쨌든, 넘어가죠.
점심입니다. 한솥도시락의 돈치고기고기도시락입니다. 왜 치돈이 아니라 돈치인가 했는데, 치즈돈가스가 아니라 그냥 돈가스와 치킨이었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한솥도시락입니다. 네.
그리고... 저녁. 참치 샌드위치, 비요뜨, 초코칩 쿠기, 주스. 할 말이 뭔가 많이 들고 울컥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날은 오븐 치즈 스파게티와 찹스테이크가 나올 예정이었는데... 날아갔어요. 저런.
밥을 먹고 왔는데 가슴이 메이는 이 불쾌한 기분은 왜 드는 걸까요. 오늘 하루 동안 속으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급식을 먹지 못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급식실이 텅 비었어요. 조리사 선생님들의 대화도 들리지 않고, 급식실이면 보통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고. 사람이 좀 빠지니까 바로 정적이 오더군요. 먹다가 체할 뻔 했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면서 계속 급식실 내부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희 동아리, FLIP에서도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자 하는데, 그 프로젝트 중 하나가 급식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표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고양국제고에서의 영양사, 조리사라는 직업은 극한직업에 속합니다. 왜냐고요? 다른 학교는 대부분 점심만 준비하면 되는데, 우리 학교는 세 끼를 다 준비해야 하잖아요. 우리 학교 영양사/조리사님들도 새벽부터 나오셔서 재료를 받고, 손질하고, 썰고, 볶고, 끓이고, 그렇게 식사가 준비되면 또 600명 이상의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배식을 하고, 또 설거지 및 정리를 하시고... 얼마나 힘이 드실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집에서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저는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직접 본 건 아니에요. 급식실은 통제되어 있으니까. 대신, 영양사 선생님께 부탁드려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진을 통해 저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거든요. 분명히 그 힘든 일을 하시면서, 사진 속에 찍히신 분들은 모두 환한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뭘까요 대체.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 사태는 누구의 잘못이고, 언제부터 출발했으며, 누가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일까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직 이 세상에 나아가기엔 너무나도 어리고 연약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아는 것도 없고, 경험한 것도 없고.
저는 제 감정을 숨기는 거에 충실한 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안의 우울이나 나쁜 감정을 숨기는 걸 잘해요. 문제가 있다면, 그 숨겨진 감정을 제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제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비어버린 것 같이 아픕니다. 저는 글쓰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글에서는 충분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과 대면으로 말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전 제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인 급식이 실시됩니다. 뭔가 무언가에 공감이 되기는 하는데,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 이 기분. 상당히 찝찝합니다. 썩 내키지도 않고요. 불쾌합니다. 저는, 카루는, 평소에 영양사 선생님들과 조리사님들께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왔을까요. 부끄럽습니다. 감사한 것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급식을 받을 때 항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조차 이제는 습관이 된 나머지, 정말로 '감사하다'라는 감정이 담겼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감사해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습관으로 굳어져서 아무런 의미 없이 '감사하다'라는 말을 한 걸까요?
솔직히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영양사 선생님들과 조리사님들께 어떻게 해야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에는 그럴 짬도 없고, 한다 해도 쭈뼛거려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매일 보기에 얼굴만은 친숙하지만, 가장 우리에게 먼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절대 손해 보지 않는 말 세 가지: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우리는 표현에 너무 인색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다섯 글자를 꺼내기 참 어렵습니다. 설령 입 밖으로 꺼낸다고 해도 이 뜻이 과연 잘 전달이 될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교감하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진심이 상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 오늘도 확실히 알아갑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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