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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u's .../High School

잃어야 아는 소중함, 급식 파업

by 카루 (Rolling Ress)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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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익숙함이란 참 무섭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니까요. 사람에겐 항상 환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자극이 없다면 어느새 기존 자극에 무뎌지고, 그 자극들은 이내 자극조차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더 강하게, 더 짜릿하게, 더 아프게 우리를 자극해야 그새 우리 몸을 관통하던 자극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죠. 우리는 이런 익숙함에 사로잡혀 이미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고**. 중학교 때 배웠던 한문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문장입니다. 이미 마음이 떠나갔는데, 과연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일까요.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오늘, 10월 20일 수요일, 전국에서 급식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서면서 역대 최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이 발생했는데요, 이에 돌봄/급식/교무행정/청소/학교스포츠/사서 등 전 직종에서 파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저희 학교도 오늘은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급식실이 아예 운영을 하지 않았어요.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전교생 기숙사 학교이기에, 삼시세끼를 모두 학교에서 주는 급식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라면? 배달음식? 교칙 위반이에요. 하지 마세요. 어쨌든, 기숙사 학교 학생이라면 꼭 필요한 급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학생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마 선생님들께서도 꽤 힘든 상황이시지 않을까 싶어요.

파업이 취소되지 않자, 학교 측에서는 사전에 대체 급식 관련 안내를 해왔습니다. 아침은 비비고 죽, 점심은 한솥도시락, 저녁은 샌드위치. 솔직하게 말할게요. 초라합니다. 이걸 먹고 과연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글쎄요. 어찌저찌 버티긴 했는데 만족스러운 식사라고는 감히 말을 못하겠네요.

사실, 이 포스팅을 딱히 학교에서 달가워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올리겠습니다. 이 날도 분명 우리의 역사이고, 상처이며, 다신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에 깊은 흉터가 남아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루빨리 그 흉터를 메꾸어줬으면 하네요. 모두가 피해받지 않도록.

아침 식사입니다. 중탕한 인스턴트 죽, 봉지에 담긴 치즈케이크, 포도주스. 단촐합니다. 제 개인적인 불만으로, 저는 좀 인스턴트 죽에 PTSD가 있어요. 음... 사실 제가 속이 뒤집어지거나 아침에 울렁거려서 밥을 못 먹을 때 항상 저런 죽으로 아침을 떼웠거든요. 차이점이 있다면 이건 따뜻하게 데워진 거고, 저는 그냥 찬 죽을 걍 퍼먹었다는 거. 딱히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어쨌든, 넘어가죠.

점심입니다. 한솥도시락의 돈치고기고기도시락입니다. 왜 치돈이 아니라 돈치인가 했는데, 치즈돈가스가 아니라 그냥 돈가스와 치킨이었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한솥도시락입니다. 네.

그리고... 저녁. 참치 샌드위치, 비요뜨, 초코칩 쿠기, 주스. 할 말이 뭔가 많이 들고 울컥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날은 오븐 치즈 스파게티와 찹스테이크가 나올 예정이었는데... 날아갔어요. 저런.

밥을 먹고 왔는데 가슴이 메이는 이 불쾌한 기분은 왜 드는 걸까요. 오늘 하루 동안 속으로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급식을 먹지 못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급식실이 텅 비었어요. 조리사 선생님들의 대화도 들리지 않고, 급식실이면 보통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고. 사람이 좀 빠지니까 바로 정적이 오더군요. 먹다가 체할 뻔 했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면서 계속 급식실 내부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희 동아리, FLIP에서도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자 하는데, 그 프로젝트 중 하나가 급식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표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기숙사 학교에서의 영양사, 조리사라는 직업은 극한직업에 속합니다. 왜냐고요? 다른 학교는 대부분 점심만 준비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세 끼를 다 준비해야 하잖아요. 우리 학교 영양사/조리사님들도 새벽부터 나오셔서 재료를 받고, 손질하고, 썰고, 볶고, 끓이고, 그렇게 식사가 준비되면 또 600명 이상의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배식을 하고, 또 설거지 및 정리를 하시고... 얼마나 힘이 드실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집에서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저는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직접 본 건 아니에요. 급식실은 통제되어 있으니까. 대신, 영양사 선생님께 부탁드려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진을 통해 저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거든요. 분명히 그 힘든 일을 하시면서, 사진 속에 찍히신 분들은 모두 환한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뭘까요 대체.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 사태는 누구의 잘못이고, 언제부터 출발했으며, 누가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일까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직 이 세상에 나아가기엔 너무나도 어리고 연약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아는 것도 없고, 경험한 것도 없고.

저는 제 감정을 숨기는 거에 충실한 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안의 우울이나 나쁜 감정을 숨기는 걸 잘해요. 문제가 있다면, 그 숨겨진 감정을 제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제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비어버린 것 같이 아픕니다. 저는 글쓰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글에서는 충분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과 대면으로 말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전 제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겁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인 급식이 실시됩니다. 뭔가 무언가에 공감이 되기는 하는데,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 이 기분. 상당히 찝찝합니다. 썩 내키지도 않고요. 불쾌합니다. 저는, 카루는, 평소에 영양사 선생님들과 조리사님들께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왔을까요. 부끄럽습니다. 감사한 것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급식을 받을 때 항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조차 이제는 습관이 된 나머지, 정말로 '감사하다'라는 감정이 담겼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 감사해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습관으로 굳어져서 아무런 의미 없이 '감사하다'라는 말을 한 걸까요?

솔직히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영양사 선생님들과 조리사님들께 어떻게 해야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에는 그럴 짬도 없고, 한다 해도 쭈뼛거려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매일 보기에 얼굴만은 친숙하지만, 가장 우리에게 먼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절대 손해 보지 않는 말 세 가지: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우리는 표현에 너무 인색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다섯 글자를 꺼내기 참 어렵습니다. 설령 입 밖으로 꺼낸다고 해도 이 뜻이 과연 잘 전달이 될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단어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교감하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진심이 상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 오늘도 확실히 알아갑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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