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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u's .../Karu's Story

'국제고'에서 '이과생'으로 살아남기

by 카루 (Rolling Ress)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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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국제고는 문과 학교입니다. 뭐 문이과가 통합되고, 미적분과 같은 과목이 추가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사회 계열 특수목적고등학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미적분이 추가된 이유도 경제때문이거든요. 기존에는 경제 수학이라는 진로 선택 과목이 있었는데, 그냥 이번에 없애버리고 미적분을 넣었더라고요.

매년 적어도 한 학년에 한 명씩은 이공계 진출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양국제고에서 과학기술원에 합격한 사례가 있기도 하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란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고에서 이공계에 도전하는 일이 절대로 쉬운 것은 아니죠.

가장 큰 문제는, 과학Ⅰ/과학Ⅱ/확률과 통계/기하/미적분을 모두 혼자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뼈저리게 이과 성향이 강한 곳에 지원한다면 말이죠. 이런 질문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Ⅰ은 2학년 때 배우고, 3학년에는 확통과 미적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바로 그 '선택'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반고 이과, 과학Ⅰ 몇 과목 배우죠? 3개. 학교에 따라서 4개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과학Ⅱ는요? 2개. 심지어 확통과 기하는 1학년 공통 수학의 연장선상이라 일반고에서는 대체로 2학년 때 배웁니다. 그런데 고양국제고에서는 확통을 3학년 때 배우고, 그마저도 기하는 진로선택과목이라 아예 선택지가 없습니다. 왜냐? 그 시간에 국제경제, 국제정치, 비교문화, 현대정치철학의 이해, 세계 문제와 미래 사회 등등 다양한 전문교과 수업을 듣거든요.

즉, 우리 학교에서 이공계를 준비한다?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쪼개고 더 쪼개서 미분해서 쉬는시간까지도 포기하고 과학탐구/수학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반쯤 농담으로 들었던, 급식실에 가는 순간까지도 화학책과 가방을 들고 마치 화학에 미친 사람처럼 중얼중얼대면서 공부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누가 그러냐고요? 네, 제가 그래요.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하고, 남들 놀 때 놀고 이러면 .... 직설적으로 말해서, 나락갑니다. 특히나 고양국제고에는 수행폭탄이 있죠. 시간을 과도하게 잡아먹는 탓에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적다고 어쩔 수 없다라는 마인드로 임하면 절대로 헤어나갈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레드퀸 가설을 아시나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가, 거기서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들은 모두 달리고 있고, 심지어는 세상도 달리고 있는데, 내가 천천히 걷거나 느리게 걸으면 결국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다면? 죽어라 달리란 소리입니다. 남들과 같아서는 절대로 발전할 수가 없다는 얘기죠.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부추기는 꼴입니다.

네, 물론 도와주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특히 저희 화학선생님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셔서요, 여기서라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무튼, 고양국제고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까지 익히기 위해선 담당 선생님들께 찾아가서 질문을 드리고 답변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도 결국 나의 아침 조회 시간, 점심/저녁 시간, 심지어는 쉬는 시간까지 빠개야 합니다. 뭐, 쪼개서 간다고 하더라도 선생님들께서 항상 계시리란 보장도 없고요

 

"과탐 하지 마! 차라리 사탐을 해!"

"화학Ⅱ를 왜 해? 차라리 화학Ⅰ을 하지...."

 

뭐, 반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과학탐구보단 사회탐구 과목들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난이도가 낮고, (당장 경제와 화학만 비교해봐도 답이 나옵니다) 서울대, 카이스트만 Ⅱ과목을 필수로 지정한 이상 선택자수가 급격하게 줄고 난이도도 답이 없을 정도로 올라갔으니까요. 알아요. 저희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원 자격이 아예 박탈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자연계 학교의 경우 수능에서 사회탐구 과목을 하나라도 응시한 경우 지원 자격이 박탈됩니다. 과탐만 하라는 얘기죠. 또한, 동일과목Ⅰ+Ⅱ 조합을 선택한 경우(화1화2 등)에도 지원 자격이 박탈됩니다. 또, 서울대와 KAIST등의 경우 과학탐구Ⅱ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 지원 자격이 박탈됩니다. 경쟁을 위한 입장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목표는 최대한 높게 잡아두고, 도전이라도 해보기 위해 안전하게, 여유가 날 때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요즘 들어서 과탐에 미쳐사는 이유는 이거 하나입니다. 더 많은 기회.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공계를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이 그랬을 겁니다. 선례가 없으니까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새로 쓰는 겁니다. 불확실한 길을 개척을 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거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느냐, 본인이 길을 직접 찾아다니고 닦으며 나아가느냐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편하게 가려면 전자가 좋죠. 그런데 본인이 목표가 확고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후자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게 될 겁니다. 목표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은 덤이고요.

"아, 나는 그냥 이 학교 들어와서 대충 상경계열로 진학해야지~~" 부끄럽지만, 제가 이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이공계로 진출할 생각은 못 했어요.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이제 목표가 생기니 정말로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기부여는 어떤 방식으로든 좋습니다. 친구로부터 자극을 받든, 아니면 내가 진정으로 깨우치든 다 좋아요. 일단 동기가 생기면, 그대로 목표로 잡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세요. 신념을 가지란 얘기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변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애초에 제가 불만이 많은 건 내 옆의 친구를 경쟁자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시스템 때문입니다. 이제부턴 파트너가 됩니다. 목표를 공유하고, 각자의 최선을 다 하고, 서로 동기부여를 해 주는 파트너요. 물론, 혼자 있을 때보다 힘이 더 들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뒤처졌을 때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함께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1기 여러분의 질문을 받을 때 이와 관련해서 걱정된다고 하셨던 분들이 있는데... 네, 사람 마음은 다들 똑같더라고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저처럼 반에서 스터디그룹(이라 쓰고 친목모임이라 읽는다)을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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