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카루 심의 등급: 경고 - (안전, 보통, 경고, 위험) [욕설, 주제]
작성일: 2022/4/7
"그만하자."
"뭐...?"
"나도 이제 힘들어. 오빠도 몇 년째 계속 취직도 못하고 있고. 이 집도 계속 월세는 내가 내고 있잖아."
"아니 세희야, 이번 달만 지나면.."
"그 소리가 대체 몇 번째인데? 오빠는 날 위해서 뭘 한 번이라도 해준 적 있어?"
"내가 해준 게 없다고? 지금까지 너한테 ...."
.
.
.
"더 이상 얘기하기 싫어. 헤어져."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던 세희의 목소리.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고 푸근한 말투였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너의 말은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아대는가. 그리고, 분명 이건 너에게서 듣는 마지막 말일 것이다. 핸드폰은 너의 목소리를 찢어대고 있었다. 너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은 미친듯이 떨렸고, 너무 무섭고 놀란 나머지 눈물도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패닉에 빠졌다.
새벽 내내 울었다. 이제 너와는 볼 일이 없겠지. 우리의 시간이, 1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그대로 녹아갔다. 형체도 없이, 어떻게든 담아볼려고 애썼지만 깨진 그릇으로는 아무 것도 간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갔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의 앞날은 영원히 빛날 것 같았다. 하루 아침에 그 길이 끊어져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침대 옆에 누워있던 너, 매일 밤마다 너의 미소에 푹 빠져있었다. 때로는 몸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추울 때면 항상 꼭 껴안고 자곤 했다. 이젠, 아무 것도 없다. 아무런 온기 없는 천쪼가리만 내 품에 있을 뿐이다.
공포스러웠다.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할까봐. 나도 안다. 이미 끝난 사이. 특히나 너라면 더더욱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것이 뻔했으니까. 그래서, 잊고 싶었다. 잊으려고 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띠리리링ㅡ"
전화벨이 울렸다.
「김세희, 010-2070-XXXX」
"씨발새끼가...."
벙찐 채로 폰을 내려봤다. 네가 왜? 나한테 연락할 이유가 없을 텐데? 잘못 걸었겠지. 아닌가, 날 떠보려고 하는 건가. 뭐가 됐든 기분이 나쁘다. 어느 쪽이 되었든, 불쾌한 감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못 들은 것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울리던 전화벨이 드디어 끊겼다.
"카톡"
보나마나 또 고등학교 동창들이 보냈을 테다. 아무 생각 없이 알림바를 내렸다.
『오빠.』
더 이상의 감정은 주기 싫었다. 난 이미 정리했으니까. 더 이상 과거의 사람에게 현재의 감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 잠깐만 도와주라.」
내키지 않았다. 진심으로 싫었다. 그런데, 너의 부탁을 어느샌가 다 들어주고 있었다. 지나고 나니 보인다. 이걸 하면 안 됐었다는 걸. 너에게 잠깐이나마 홀렸다는 사실이 역겨움까지 들게 한다.
「응. 다음에 보자.」
너의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반 년 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캠퍼스에서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고, 네가 집에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아무 것도 없었다. 너의 인스타엔 늘 그랬듯 카페 사진이 올라온다. 연락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에게 안 하는 거겠지.
버려진 거다. 진심으로 싫다.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용건 다 끝나면 다시 남남처럼 굴고. 좆같았다.
"...갖고 놀았네. 아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아서 카톡을 차단했다. 아직까지 갖고 있던 전화번호도 지워버렸고, 인스타도 차단했다. 김세희란 이름은 이제 내 기억 속에 없다. 아니, 현재의 너는 이제 내 기억 속에 없다. 내 머릿속엔 그저 나와 예쁘게 사귀었던 세희가 있을 뿐이고. 이제 세희란 사람은 없다. 너는 죽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이제 다신 볼 일도 없으니, 그저 너에게 애도를 갖고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사별이다. 넌 죽었던 거다.
의외로 시간은 금방 흘렀다. 흉터는 아물지 않지만 상처는 조금씩 나아져갔다. 나는 오히려 편하다. 네가 이제 없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너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너는 그냥, 사고가 나서 죽은 것 뿐이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사고로 죽었을 뿐이다. 그것 뿐이다. 너는 날 싫어하지 않았고, 나도 널 죽도록 사랑했다. 운명의 장난이 우리를 떼어 놓은 것 뿐이다.
가끔씩 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네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너와 보냈던 시간, 너와의 추억들에 가끔씩 잠기곤 한다. 다시는 보지 못하니까. 내가 이런 사람과 함께했구나.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구나, 정도를 자각하는 데엔 나쁘지 않다.
네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애썼다. 머리도 밝은 색으로 염색하고,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다니고, 네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팔찌를 하고 다니고. 이 정도는 너를 위해서라도 해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어차피 너는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저렇게 정신승리로 나를 세뇌시키려고 해도 현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인스타에 들어갔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고등학교 동창들도 스토리에 이것저것들을 올리고 있었다.
"권진우....어?"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연애라고는 해본 적도 없던 놈이 여자와 손을 잡고 있다. 그리고, 진우의 옆에는 세희가 있었다.
"아 씨발...."
충동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미칠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대로 몇 시간을 흐느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역겨웠다. 분명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닌데, 자꾸면 신경이 간다는 사실이 날 더욱 짜증나게 했다. 어쩜 이리 끝까지 엿을 먹일 수가 있는가.
문득 이상한 점을 찾았다. 둘이 사귄지는 이미 200일을 아득히 넘었다. 8개월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다. 뭔가에 홀린듯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인스타를 뒤져보고, 카톡 프로필 사진들을 뒤져보고, 최대한 캐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찾아냈다.
세희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건 7월 2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건 7월 18일, 이 둘은 7월 21일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건 계획된 거였구나.
"...그땐 니네 둘이 사귀고 있었으니까 말을 못했지."
"어차피 씨발 다시는 안 볼 사이인데 걍 말해."
"그거 아냐? 김세희 걔, 끝무렵에 진우한테 관심있었음."
"뭐?"
"아 잠만, 이모! 여기 고기 1인분이랑 소주 한 병 추가요."
"네~!"
"야... 돼지 새끼야 작작 쳐먹어."
"지랄. 니도 어차피 들으러 온 거 아니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나, 세희, 진우를 모두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대학을 떨어져서 다니는 탓에 연락은 나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진작에 끊겼다고.
"정확히 말하면 권진우 그 새끼가 하면 안 될 짓을 한 거지."
"그 씨발... 개새끼."
"걔가 나한텐 몇 번 얘기 했었어. 자기는 세희 좋아하는데, 네가 걸림돌이라고."
"미친새끼 아냐? 나랑 걔랑 사귀고 있었는데 걜 좋아했다고?"
"어. 그래서 그땐 일부러 너한테 말 안 했지. 괜히 전했다가 너 뒤집어지는 건 뻔하니까."
"근데 그 씨발년들은 왜 사귀고 있는 건데."
"아.... 네가 제일 불쌍한 새끼다."
"하..."
"마지막에 세희가 양다리 걸친 거지. 걔도 진우가 자기 좋아하는 거 눈치 깠었고."
"..."
"그래서 너랑 진우랑 간보다가 진우랑 갈아타고, 넌 그냥 차버린 거지."
심장이 덜컥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개소리...야, 거의 공백기간이 3주 정도 있었는데 이게 환승이라고?"
"와... 너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뭘 모르는데?"
"딱 봐도 뻔하잖아. 겉으로는 안 사귀는 척 둘이 썸만 타다가 이정도면 됐겠다 싶으니까 연애중 띄우고 꽁냥대는 거 아니야. 너도 눈치는 참 지지리도 없다. 불쌍해서 어쩌냐."
"하... 씨발...."
뒤통수를 도끼로 찍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죽여버리고 싶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
난 너에게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넌, ....
"근데, 걔가 헤어지고 나서 한 2주쯤? 나한테 전화를 걸었거든?"
"7월 중순 쯤 아니야?"
"어.. 맞아."
"와 이거 완전 미친년이네..."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난 벙찐 눈으로 바라봤다.
"봐. 둘이 싸웠었어."
세희가 친구에게 보낸 카톡을 봤다. 정말이다.
"답 나오지?"
"이 씨발년이 나 갖고 놀았네 아주."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이 싸우고 사이가 한참 안 좋았을 때쯤, 기회를 봐서 다시 나에게 오려고 손을 써둔 것이다. 그러다 둘이 잘 풀리니까 이제 나는 안중에도 없어진 것이다. 완벽하게 난 장난감이 되었었다.
"미안하다, 이런 말만 전해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 쳐 죽일 건 저 새끼들인데."
어느샌가 몸은 망가졌고 폐인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내 모든 걸 바친 결과가 겨우 이거였다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신경 쓰다간 나만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았다.
분명 너희도 좋은 결말을 맺진 못하겠지.
지금 너희의 행복이 너희가 쟁취한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가 앗아간만큼, 분명 다시 돌아올 테니까.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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