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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u's Novel

Karu's Novel #13: 학교폭력은 당한 게 잘못

by 카루 (Rolling Ress) 202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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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위험' 등급 작품입니다. 주의해주세요.(사유: 주제, 선정성, 폭력성, 모방위험)

카루 심의 등급: 위험 - (안전 / 보통 / 경고 / 위험)

*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글입니다. 일부 트리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일: 2022/4/16 ~ 4/18 (3일간)


학교폭력. 우리 사회의 끊이지 않는 문제. 학교폭력 예방 교육 등의 효과로 점점 이러한 것들이 줄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천만에, 그건 꿈이었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가해자, 교사, 학교의 입막음만 심해졌을 뿐.

"야 피해! 걔 완전 걸레야."

"주말에 현수랑 이거 했다며? 봐봐. 이거."

"야야 그만해라! 애 울겠다."

복도를 걸어다닐 때마다는 물론, 반에서 앉아있기만 해도 인신공격과 성희롱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교실에 계실 때는 다들 모범생인 척한다. 그게 제일 역겹다. 반에 별 볼일 없는 사람들만 있을 때, 그럴 때에만 괴롭힘이 이루어졌다. 대놓고 성관계를 묘사하는 손동작을 하며 나를 욕먹이는 건 기본이다.

"야야, 쟤야?"

"오우.. 야, 몸매 개 쩐다."

 

남자애들의 성희롱과 몸평이 이어져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싫은 티를 내면 괴롭힘이 점점 더 심해졌다. 울고 싶던 마음을 간신히 참고 교실로 왔다. 그래도,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

머릿속이 새햐얘지는 기분이었다. 파우더는 바닥에 깨져 있고, 책상은 틴트로 낙서가 되어 있고, 사물함은 치약으로 난리가 쳐져 있었다. 참았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내가 울어버리면 더 좋아할 테니까.

책상이랑 사물함을 정리하는 데 점심시간을 다 보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 학교를 들어오고 몇 달 뒤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 대체 왜.

"야, 근데.. 너넨 왜 김혜선한테만 그 지랄임?"

어딘가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씨발...장난감 갖고 노는 데 이유가 있냐?"

"생긴 것도 완전 걸레같이 생기지 않았냐? 이런 애가 몸 팔고 다니는 거야."

듣지 말 걸 그랬다. 어딜 가나 내 욕만 가득했다. 내 편? 내 친구? 애초에 그런 건 없었다. 알고 있는데, 어째서. 어째서 난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걸까. 무서웠다. 가해 학생들의 해코지가 두려웠다. 지금보다 괴롭힘이 심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현실은 매체가 아니다. 정의? 그딴 건 없다. 그저 어른들의 행복회로에 지나지 않을 뿐. 현실은 가혹하다. 단순히 장면 전환으로 쉽게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6개월 전이었다. 1학년 때, 고등학교 생활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세 달도 지나지 않아 그런 기대는 모조리 무너졌다. 왕따, 집단 따돌림. 그 대상이 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얘기를 나누었던 반 애들도 태도가 돌변했다. 이제 아무도 나와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얘네도 적당히 하고 그만하겠지. 장난이겠지.'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괴롭힘과 따돌림은 멈추지 않았다. 지나가면서도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때리고, 어깨로 치고. 잠시 물리적인 폭력이 잦아드나 싶었을 땐 이미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뒤였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고 근거도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이미 놀잇감으로 전락한 뒤였다.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극적이기만 하면 빨리 퍼진다.

"와.. 김혜선 걔가 이랬다고?"

"더럽다."

"몸 팔고 다닌다잖아. 말 다 했지 뭐."

"존나 싫다.. 왜 그렇게 살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너희들이 도대체 뭔데?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 지껄이는 건데?

거짓 소문은 악질적이다. 한 사람의 사회적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거니까. 거기에 반응을 하면, 반응했다는 이유로 더 빨리 퍼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으니까 빨리 퍼지는 건 마찬가지다. 어찌 할 방법이 없다. 걷잡을 수가 없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행동하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어딘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겠지. 믿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서 무언가라도 해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혜선아. 무슨 일이니?"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진짜 요즘 너무 힘들어서요."

"어 그래,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게... 자꾸 친구들이 저를 좀 괴롭히는 것 같아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선생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딘가 쎄한 기분이 느껴졌다.

"음... 혹시 지금 고자질 하는 건 아니지?"

"...네?"

말문이 막혔다. 일단 학생의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교사가 학생에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가? 저러고도 당신이 교사인가? 일단 무슨 일인지 듣고 판단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난 계속 참아왔다. 계속 참아와서,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였다. 그런데 기껏해서 들은 말이 '고자질'이라니.

당신은 나의 담임선생님이자, 이 학교의 위클래스 담당 교사다. 적어도, 당신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선 안 됐었다. 적어도, 당신이라면.


급식실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 며칠 전에 일이 터졌었다. 일진 무리 중 한 명이 잔반을 정리하러 가면서 넘어지는 척 내게 음식물을 쏟았다. 겉으로는 사과를 했지만, 지들끼리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나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다. 그런데, 이젠 무섭다. 급식실에만 가면 누군가 나를 해코지할 것 같다. 어차피 밥을 먹어도 모두 토하는데, 그냥 화장실에서 빵이나 먹는 게 제일 속이 편하다. 적어도 이곳에선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까.

내가 너무 한심했다. 비참해보였다.

'내가 과연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죽어버리는 게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없을 거잖아. 그렇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밀고 이어질수록 점점 더 비참해져갔다.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 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서 도망치고 싶다.

집을 나왔다. 나는 언제쯤 죽을 수 있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람들은 항상 밝게 웃는다. 왜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걸까.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한 운명이 찾아오는 걸까.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아니, 그냥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다. 왜 나는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고, 학교에서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야 하는가. 누가 그걸 결정했는가.

계속 걸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랑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대충 때우고 계속 걸었다. 내가 모르는 길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처음 보는 외딴 곳에 혼자 남겨지는 게 좋다. 적어도 여기에선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밤이어도 여름은 여름이다. 벤치에 잠깐 앉는다는 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

.

.

"혜선이가 아무 이유 없이 반 애들에게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머님, 그거 그냥 요즘 애들 장난이에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장난이라고요? 선생님, 혜선이가 오자마자 오열을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다고. 유서까지 써두고 가출한 적도 있어요. 선생님께선 아직도 이게 장난으로 보이십니까?"

집을 나갔던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가기 싫었다. 몸이 피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 번쯤은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피해 내 삶을 누려보고 싶었다. 하루만이지만, 행복했다. 그런데 어째 나의 행복은, 부모님의 불행이 된 걸까. 부모님은 담임선생님과 전화를 하고 계셨다.

"어머님, 진정하시고요. 혜선이가 맞을 만한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뭐...뭐라고요?"

눈을 질끈 감고 일부러 듣지 않았다. 난 더 이상 담임을 신뢰하지 않는다. 저런 것도 담임이라고. 학생에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저게 부모한테 할 소리인가? 자식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는데, 저걸 부모한테 저따위로 이야기한다고? 그러고도 당신이 교사인가?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이 사람이긴 한가?

전화가 끝나고 집안에는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담임이 그러더라고. 혜선이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겠느냐, 이런 식으로."

"아니 무슨..."

"그게 너무 속상한 거야. 자식이 힘들다는데, 엄마로서 아무것도 못 해주는 내가 원망스럽기만 하고.."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해서 흐느끼셨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엿듣다 중간에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부모님께서 상처를 받는 일도 없었을텐데.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그 다음 날이다. 학교에서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담임은 나를 혼내지도 않았다. 나를 반겼던 건 일진들이었다. 훨씬 더 심하게 나를 갈구어댔다. 또 시작이구나. 이 생각 뿐이었다. 감정이 망가진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어제 있었던 짧은 시간이 꿈만 같았다.

점심시간에 공터 뒤 구석에서 빵을 먹고 있었다. 목이 계속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처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마침 교장이랑 담임이 거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영숙 선생... 듣자 하니 6반에서 좀 사고가 났나보더라고."

"별 일 아닙니다. 아이들끼리 조금 장난을 쳤나 봐요."

"교육청 귀에 들어가면... 알죠? 적당히 덮으시고, 애들이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하세요."

"예예, 그럼요. 단속은 확실하게 할테니 걱정 마세요."

"알면 됐어요. 일 키우지 말고."

아무래도 부모님이 학교 측에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미 이 학교는 글러먹었다. 철저한 관료주의적 사회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탄압받는다. 어린 물고기가 죽든 말든, 어부는 관심이 없다. 살이 잘 오른 통통한 물고기들만 낚아올리면 그만이다. 나같은 낙오자들은 신경 쓸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거겠지.

"학생 여러분께 알립니다. 학생회 임원들은 지금 즉시 교장실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학생회 임원들은 지금 즉시 교장실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울렸다.


"아...씨발. 왜 교장은 우리까지 불러서 지랄이야."

"뭔 일 있었어?"

"아니.. 그 틀딱새끼가 우리보고 자꾸 지랄하잖아. 그 이번에 학부모회에서 학교폭력 관련 민원 넣은 거, 우리보고 그런 일 한 번 더 일어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했어."

"그걸 너희한테 그렇게 얘기했다고? 학부모회에서 한 거를?"

"내 말이.. 개빡친다니까."

반 애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대강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된다. 그런데, 입막음을 학생에게 시키다니? 오히려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학생의 인권이라곤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구나. 그저 자신들의 권위가, 자신들의 명예가 더 중요하구나. 이 사람들은 교육자가 아니다. 스승이 아니다.

아니, 인간도 아니었다.

잊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폭력은 당한 게 잘못이다. 그 누구도 피해자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적어도 당신들은 그랬다. 내가 죽어가고 있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냥 없어도 되는 아이니까. 당신들에게 중요한 학생이 아니니까. 전교권에 드는 것도 아니고, 학급 임원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다. 그러니, 가치가 없는 학생이겠지. 지켜줄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이제, 다 끝내자.

지긋지긋한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 본 내용은 소설임을 밝힙니다.

* '위험' 등급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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