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저는 평소에 이과적 뻘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초선은 같아도 애초에 동경이 달랐다.
뻗어나갈 수록 종점간의 변위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
카루, "벡터" (2021)
무슨 말이냐고요? 자, 여기 원 x²+y²=1 위의 두 점 B, C가 있습니다. A(0, 0)이고요. 두 벡터 v, u는 각각 종점을 B, C를 종점으로 하는 단위벡터입니다. 지금 보면 v와 u가 겹쳐보이죠. 약간 다르긴 한데, 뭐 거의 비슷합니다. 실제로 점 B와 C의 좌표도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요.
그런데, 이건 거리가 아니라 각도로 봐야 합니다. 여기서 원의 반지름을 매우 크게 늘려볼게요. 오른쪽 그림을 봐주세요. 반지름을 1에서 1,000,000으로 늘렸습니다. 뭐 여전히 비슷해보인다고요? 글쎄요. 확대해볼게요.
B와 C의 거리는 매우 멀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같은 점으로 볼 수가 없죠.
이런 겁니다. 모든 사람들도 자신만의 방향이 있어요. 아무리 절친이라고, 친하다고 해서 인생에서의 방향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각도가 1도, 1분, 1초라도 차이가 난다면 이미 그 차이가 나는 순간 갈수록 벌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저는 과거의 추억에 갇혀 사는 경향이 강합니다. 3년 전에 있던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니까요. 이따금씩 제 의식 속에서 깨어나 저의 현재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쩌면 그냥 의미 없는 후회겠죠. 요즘 들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작년의 일입니다. 2020년, 고양국제고에 처음 들어왔던 그 순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설레는 시간을 보냈던 그 때.
작년도 이제 어느새 추억이 되었네요. 다들 앳되어보이고 살짝은 천진난만하기도 했던, 아직은 중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금 어수선하고 정신없기도 했던 작년.
2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학생들이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선택과목에 따라서 본인의 미래가 확실하게 갈리고, "나는 알지만 너는 알지 못하는", "나는 할 수 있지만 너는 할 수 없는", 이러한 구분이 생기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법조계 친구들에게 Ceteris Paribus(경제학 용어;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를 들먹이면 이해를 못한다든가, 저처럼 화학을 듣는 친구들에게 퍼텐셜 에너지로 공격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근데 난 왜 알고 있지 야 이과 정신차려 혹은 제가 쌍극자 모멘트로 공격할 수도 있고요.
저는 여전히 작년의 추억에 갇힌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입시 자체를 부정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대학이 뭐라고. 우리를 이렇게 스트레스에 몰아넣고, 서로를 경쟁자로 만드는지. 이쯤되면 각자 원하는 대학과 학과가 정해지기 시작합니다. 가슴이 아리는 건 왜일까요.
더 이상 작년은 없습니다. 작년 같은 추억도 없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웃었던 기억이 박혀서 우리 몸을 마비시킨다고 해도,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앞질러버리는걸요. 레드퀸 효과. 나를 놔두고 세상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습니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죽을 힘을 다 해 달려야 합니다.
나는 놀고 싶은데?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정신 차리세요. ...라고 말은 하지만, 저조차도 이 착각의 늪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들 노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그만큼, 안 보이는 곳에서 훨씬 노력하고, 피땀을 흘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난 왜 쟤보다 성적이 낮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것만큼 무식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저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문제는 뭘까요? 사람마다 방향이 모두 다르다는 것. 우리는 모두 나아가고 있어요. 한 걸음씩 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은 모두 달라요. 같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착각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향, 가치관, 목표 등이 다르니까요. 동일한 인간은 없습니다. 동일한 목표란 것도 존재하지 않고요. 그러니까 '그' 정체성이....읍
내 친구 중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진학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저는 아예 없다고 단언합니다. 제가 의대를 갈 것도 아니고, 혹은 제 친구가 '그 학교'에 지원을 할 것도 아니고. 뭐.. 자아실현의 과정인 셈이죠. 모든 사람이 획일화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각자의 개성을 펼치지 못한다니.
그래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 싫을 뿐이에요. 나는 더 머무르고 싶은데, 나는 조금 더 학교 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나는 아직 너희와 더 신나게 놀고 싶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고, 화학 공부도 재밌게 하고 싶고, 블로그 포스팅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근데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압니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이미 저를 빼고 다른 친구들은 제동을 건 상태인가 보군요. 안타깝습니다. 뭐가요? 제 처지가요. 6번 친구가 제게 어떤 얘기를 했는데, 음... 저도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어요. 진심으로.
나란히, 같은 길을 걷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잡은 손이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다 끊어집니다. 아직까진 괜찮아요. 당신과의 거리는 겨우 한 팔 남짓이니. 그런데 그 거리가 벌어집니다. 나와 당신 사이에 다른 장애물이 끼고, 큰 도로가 끼고, 이제 다른 건물이 가로막네요. 더 이상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다른 갈림길로 들어섰으니까요. 목표가 달랐던 겁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처음에 <벡터> (카루, 2021)을 인용했는데, 다른 구절을 가져와볼게요. 참고로 이 시(?)는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언젠가 허수단위 i를 곱하게 되면
90도 돌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꿈에 그리던 순간이 올 것이다.
카루, "벡터" (2021)
영원한 이별이란 없고, 영원한 만남도 없습니다. 분명 우리 안에도 여전히 동심은 남아있을 테고, 뜻이 있다면 다시 만날 날이 오겠죠. 1번친구, 2번친구, 3번친구, 그리고 5, 6, NOCHES. 난 당신들과 내가 모두 찢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이제 머지 않았죠. 그러나 우리가 의지와 마음만 있다면 다시 만날 날이 언젠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각도가 틀어지면 두 점 사이의 거리도 크게 틀어지는 게 맞죠. 그래도 내가 당신을 향해 가면 됩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임의의 복소수 z=a+bi (a, b는 실수, i=√-1)는 복소평면상에서 원점을 시점으로 하고 점 (a, bi)를 종점으로 하는 벡터로 나타낼 수 있어요. z에 i를 곱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짜증이 납니다! 90도 회전합니다. zi=ai-b=-b+ai니까 zi의 종점이 (-b, ai)에 대응되는 거죠.
그래요. 네가 안 오면, 내가 가면 됩니다. 이런 시도 있잖아요.
아, 이건 진짜 시예요. 제가 쓴 거 아니고.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략)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재회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이런 수험 생활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죠. 적어도, 대입이 끝나면 우리 모두 한시름 놓을 때가 올 겁니다. 새로운 위협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숨은 돌리겠죠.
내가 기다리는 건 그날 뿐입니다. 지금의 인지부조화를 견뎌내고, 우리 모두가 고생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 이상 나 혼자 정체되어 절규하는 상황은 마주하지 않아도 되겠죠.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어요.
수능이 이제 1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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