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왜 사람은 속상한 일을 겪고 혼자 고통스러워할 때 남들에게는 그저 웃음거리로 보이는지. 여러분이 보는 카루는 그저 생각을 잘 정리해서 글로 풀어내는 모습일 뿐입니다. 영상이 아니라면. 제가 웃거나 울면서 글을 써도, 대충하거나 공들여서 글을 써도, 글의 내용이 비슷하다면 여러분은 현재 제 상태를 알 턱이 없죠. 원래 사람이란 다 그런 거예요. 내 옆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공동체를 이끌어나간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꾸려간 공동체가 누군가에 의해 와해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요. 여러분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거,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거든요. 마음고생 심하게 할 겁니다.
"너희 동아리 사라지는 거 다들 동의하는 거지?"
"네?"
심장이 덜컥했다. 동아리가 사라진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전혀 알고 있던 게 없다.
"너희 부원들이 동아리를 그만하고 싶다는 것 같더라고. 너랑 전체 부원 모두가 동의하는 거 맞지? 최종 결정이 나면, 폐동 신청서를 줄게. 그걸로 결재를 올려서 이후 작업을 진행할거야."
"아니 선생님... 잠시만요. 저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인데요...?"
무슨 일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 동아리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부원들끼리 분위기가 파탄이 났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대표라는 역할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비난의 화살은 다 나에게 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분명 내 동아리의 대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동아리의 의견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카루 넌 가만히 있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아니, 나도 갈 거야.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잖아."
"지금까지 손 놓고 지켜본 게 누군데?"
나는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동아리 폐지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고, 유지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물론, 나는 부장이기에 폐지를 마냥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더 골치아파진다. 그리고, 일부 부원들의 의견을 따라 내가 폐지에 손을 들면 다른 부원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는 내 안에서 고민하고, 선생님들과 상담하러 다녔던 게 전부였다. 실질적으로 뭘 한 게 없다. 어쩌면 내가 욕을 먹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끼리라도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우리가 와해되는 건 시간문제다. 내부 트롤이 가장 위험한 변수가 아니겠는가.
우리 동아리가 존속파, 폐지파로 나뉘었다. 골치아프다.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설령 존속을 시킨다고 해도, 이미 폐지로 마음을 기울여버린 친구들이 내년 활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순히 폐지를 받아줄 것인가? 그럼 우리는 뭐가 되는가. 우리도 그런 고생 속에서 1년을 버텨왔다. 그리고, 단순히 힘들어서 그런 거라면 다른 동아리는 어째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가.
'아, 그냥 내가 운영을 잘못했나보다. 그저 너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부장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부장짓을 하고 다녔으니 이 사태가 일어나지.'
'난 진짜 왜 되는 게 없는 걸까. 나도 행복한 동아리 꾸리고 싶었다고... 그랬는데....!'
순간 울컥했다.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마스크를 벗었다. 눈앞이 뜨거웠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목에서 무언가가 나오려고 하는데 계속 걸렸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계속 쏟아져내렸고, 손과 발은 크게 저려왔다. 창백해질 정도로 오열했던 건 이번이 2학기 들어서 두 번째였다. 어쩌면 내 감정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진짜. 도망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그렇다. 어쩌면 이게 번아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1년을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왔다. 나 혼자 이 동아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희'를 위해 동아리를 완전히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동아리를 탈바꿈시켰다. 그게 역효과가 난 거다. 난 뭘 한 건가. 내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나 싶더니, 차츰 자학과 자기혐오로 변해갔다. 나도 운영 잘 하고 싶었는데, 선후배 관계 돈독한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운영을 하지 않았다면, 내 욕심 때문에 동아리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모두가 행복했을텐데, 왜 나는 이런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저 나는 쓰레기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대로라면 화장실 안에서 울다가 지쳐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만 멈추고 교실로 어기적거리며 기어갔다. 손발이 크게 저려 손을 펴지도 못하고, 걷는 건 다리를 다친 사람처럼 그저 다리를 질질 끌었을 뿐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꺼내주세요. 절규를 하면서 교실로 갔다. 정신을 조금만 놨으면 지난번처럼 발작을 할 수도 있었다. 다행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일단 교실 문을 열었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크게 놀라시더니 복도로 데려가 진정시켰다.
"...네 잘못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상황이 이런걸. 넌 잘못한 거 없어."
"그래도.. 왜 저희만 이렇게 분열되는 걸까요..."
"너희만 그런 것 같지? 괜찮아. 다른 데도 다 그래."
선생님 말씀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적어도 폐동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나에겐 충격이었다. 난 뭘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건가. 너무 죄송하다. 이 동아리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왔던 선배들에게. 나를 믿고 지지해주셨던 우리 동아리 담당 선생님과,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시간 끌지 말고, 이번 주까지 동아리 존속 여부 결정해라."
"네, 알겠습니다."
담당선생님과의 대화도 끝났다. 부장이란 직책은 가혹하다. 밖에서 쏟아져오는 화살을 대신 맞고, 안에서 터지는 폭탄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을 만들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내 잘못이다.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난 누굴 탓할 사람도 없다. 나를 탓해봤자 자학만 심해질 뿐이다.
거의 매일같이 교무실에 불려갔다. 내가 간 건지, 불려간 건지. 담당선생님께서는 늘 카톡으로 나를 부르셨다. 거의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면담을 하곤 했다. 많으면 하루에 다섯 번씩 교무실을 오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동아리는 고양국제고에서 중요한 공동체다. 내가 이렇게 불려다니는 것도, 부원들은 모른다. 내가 얘기를 안 했으니까! 더 이상 나 때문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내면 나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할 게 뻔하지 않은가.
동아리를 존속시켜라. 그게 나의 임무다. 담당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주어주신 과제다. 나는 꼭 그걸 이루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폐지파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진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친구들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나는 어느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너희를 존중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동아리를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악물고, 나도 강경한 태도로 나아갔다. 폐지하자는 친구들을 소집해서 회의를 했다. 최대한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가벼운 이야기도 던지고 그랬다. 의견 수렴은 좋았다. 그런데 그 수렴된 의견이 '폐지'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나는 겉으로는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렇다. 대체 왜? 왜 나는 이렇게 중간에서 껴서 고생해야 하는가. 이것도 인과응보인가.
다음날, 마지막 회의를 개최했다. 전날 담당선생님께 또 불려가 1시간 가까이 상담을 들었다. 상담을 '받은'게 아니라 '들은' 이유는, 진짜 그냥 한 시간 가까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동아리를 존속시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도 이 점에 크게 공감한다. 부디 폐지파 친구들이 내 뜻을 이해해줬으면 했다. 내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날 회의를 했다.
'이판사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이미 와 있었다. 그리고 회의 결과는..
예상했듯이, 동아리를 없애기로 결정되었다.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찾아갔다. 이제 우리 동아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행사, 우리의 추억, 대대로 물려오던 소품들과 행사 물품들, 모두 이제 우리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라는 정체성조차 상실한 상태다. 나는 누구인가. 더이상 우리 동아리의 부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무너졌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렇다.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나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사회에는 이런 억울한 일이 넘쳐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이 사태로 뒤통수를 몇 번이나 맞은 지 모르겠다. 사람에게 지친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너무 상처다. 언제부터였을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동아리를... 없애기로 했구나. 선생님도 조금 당황스럽네."
"...."
"괜찮아. 너희 동아리만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
죄송합니다만,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동아리 폐부 신청서를 줄게. 그걸 작성해서 내면, 선생님이 결재를 올려서 폐부 절차가 진행될거야."
내 손으로 내 동아리를 없애는 순간이 왔다. 내가 없애고 싶어서 없앤 게 아니다. 나는 도저히 신청서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는 분명 폐지하겠다는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터. 사전에 제대로 협의도 되지 않았다. 분명 본인들끼리 이야기했던 것들이 훨씬 자세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허수아비였을 뿐이다. 이름 뿐인 부장.
"너 탁구채 내려놓고 잠깐 나와봐"
"...알겠습니다."
방학식 날, 마지막 체육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사실, 이분도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 중 한 분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나와 학교를 산책하시며 동아리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은.. 너희가 결정을 보류했으면 좋겠거든? 쟤네가 겨울방학 지내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OT 전까지는 시간을 주고 싶어."
"...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다시 부른다고 돌아올까요?"
회의적이다.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아봤자 역효과만 날 뿐이다. 난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지켜봤으니까. 회의를 하면서 그 친구들의 의견과 생각을 들었으니까. 이미 우리 동아리에 대한 마음은 꺼졌다. 열정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존속파는 동아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폐지파는 동아리를 없애길 원한다.
선배들은 당연히 동아리를 존속시키길 원한다.
담당선생님께서도 동아리를 유지시키길 원하신다. 그런데, 폐지를 반대하진 않으신다.
총동아리 선생님께서는 중립적이시며,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신다.
그리고 체육선생님께서는 결정을 보류하길 원하신다.
도망치고 싶다.
난 이 중간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나는 이제 부장 역할이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갈려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여섯 개의 톱니바퀴가 나를 중심에 두고 내 살을 조금씩 뜯어내고 있었다. 완전히 갈려서 뼈가 으스러지고, 형체까지 사라지면 이제 그만 갈겠지. 내가 저정도로 망가져야 이제 날 그만 괴롭히겠지.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아무런 신경도 쓰기 싫다. 그날들의 악몽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내일은 어제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기숙사에서 눈을 감는다.
그게 헛된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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