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오늘은 수능 D-50입니다. 덕분에 고3들은 이제 수험생이란 지위를 제대로 갖게 되었어요. 계속 언급하는 거지만, 전 수능을 안 봐요. 그래도 대입은 수능이 전부가 아니죠. 수능이 다가온다는 건 곧 전체적인 대입 일정이 다가온다는 뜻. 오히려 면접 준비와 수학/과학 공부 때문에 점점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나마 화학은 자신 있었어요. 화학 자체가 개념에 비해 추론/계산이 빡세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편이었고 (적어도 일단 우리 학교에서는 1st였으니까.. 모의고사도 웬만한 사탐보다 화학이 잘 나왔습니다.) 화학에 대한 열정도 충만했으니까. 그리고 화학 선생님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슬슬 가닥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얘는 나쁘지 않아요.
수학선생님께 T 학교 면접 기출문제를 들고 가서 기하 관련 질문을 했다가 좀... 깨졌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속 어두운 표정으로 절 보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로서는 매우 듣고 싶지 않던 말을 하셨습니다. 좀 말씀을 길게 하시긴 하셨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아요.
기본적인 개념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이런 문제를 푸는 게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맞는 말씀입니다. 기하 4일컷. 말이 안 되는 거죠. 다른 학교에서도 한 학기에 걸쳐 수업하는 걸 이렇게 간단히 때워서 과연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맞는 말씀이에요. 맞는데, ...순간 울컥했습니다. 그보다, 겁이 나는 거예요. 이러고서 1차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설령 붙었다고 해도, 내가 과연 이런 문제를 그 상황에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이제 점차 현실적인 공포가 저를 감싸는 거죠. 동시에 회의감이 들더군요.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맞나. 선배들도 이런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 나아갔던 건가.
제가 점차 초라해보이는 겁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글에서는 제가 굉장히 차분해 보일 거라고 말씀드렸죠.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당시 상황에서 감정을 최대한 잘라내고 배제한 게 지금의 글이니까. 어쩌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저의 스트레스를 크게 경감시켜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거라도 없었으면 전 아마 책상에 고개 처박고 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전에도 언급했는데, 이런 말이 있죠. 청소년기는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가 가장 일치하지 않는 시기라고. 그래서 자신이 가능한 것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초라하게 본다고. 제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제가 계속 얘기했던 것 중에 6 우주상향이 있었는데, 사실 면접이나 자기소개서가 없다면 아무리 우주상향이라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죠. 지금와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으니까,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면접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선 1차를 붙을지 말지부터 예측하는 게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1차를 붙든 떨어지든 일단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사실이고. 그리고 거기에서 스트레스가 시작됩니다.
10월이 넘어가면 중요한 건 자원 분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디에 얼만큼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을 건지. 그리고 그 페이스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지. 수능 최저가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수능에 80%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는 듯 합니다. 특히나 4합 7의 고려대 같은 경우에는... 뭐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되죠. 특히 탐구 과목들은 이제 마지막 보루입니다. 국영수는 사실 지금 해서 올리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탐구, 특히 사회 탐구 과목들은 (상대적으로 계산량이 많은 사문/경제 제외) 지금이 막판 뒤집기 포인트가 될 수 있어요.
제 상황에서도 저에게 맞는 자원 분배 전략이 있겠죠. 교차지원이 섞여가지고 조금 난감하지만, 그래도 저는 수학에 몇 %, 화학에 몇 %, 학생부에 몇 %, 제시문 기반 면접에 몇 % 이렇게 분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면접 시즌이 오지 않았기에 대부분 교과 기반으로 밀고 있지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수학이랑 화학 개념을 빨리 끝내려고 하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하지 마.'
'어차피 안 될 텐데.'
'너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들도 못 한 일이야.'
이러한 제 마음의 속삭임도,
'네가 이것 때문에 다른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진 않을지 걱정돼.'
'현실적으로는 사실 어렵지.'
'지금 한다고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르겠다.'
저를 걱정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말씀도,
점차 제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와서 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지금까지 제가 믿고 걸어왔던 길이 막다른 길이었다는 걸.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요.
'하는 데까지 해보자.'
'되든 안 되든, 일단 해 보는 거야.'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이러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응원도 저의 부정적인 감정에 묻혀 갔습니다. 저에게는 더 이상 저를 끌어주고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걸 혼자 헤쳐나가야 합니다. 솔직히 지금 당장 느끼는 감정을 말해보자면, 무서워요.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하는 공포감이 저를 짓누릅니다.
작년 9기 선배들께서 대입 관련 멘토링을 해주셨는데, 그때 받아적은 것들을 다시 펼쳐봅니다. 서러움, 짜증, 친구 간의 불화가 늘어날 거라고. 그래도 감정 소모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으라고. 제가 어지간해서는 뭐 감정을 잘 느끼고 공감을 잘하고 그런 편은 아닌데, 이렇게 제 속을 파놓는 일들에는 한없이 역치가 낮아집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하나둘 들어오면 그냥 훅 무너져요. 막을 새도 없이.
어쩌면 제가 너무 급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평소에 이런 무거운 분위기의 글을 쓰면 항상 마무리는 최대한 밝게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겠네요. 굳이 없는 힘을 끌어다가 애써 밝은 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게 맞지 않는 가면을 쓴다는 것 자체도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일이니까요.
너무 힘들 때는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봅시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쥐어 짜낼 필요는 없죠. 이 영상을 올렸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저도 막상 같은 상황에 놓이니 쉽게 감정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한 건 누구나 다 그렇다고 해도, 휴식을 취하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라고 해도, 저는 제가 한 말을 하나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젠 학교에 나오기도 싫어지고, 지칩니다.
'그냥 나도 가정학습 쓸걸.'이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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