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이제 대부분의 학교는 원서가 마감된 상태이므로, Rolling Ress Underground에 있던 내용을 모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아, 그런데 지원 대학교는 작성하지 않으려고 해요. 한국외대야 뭐 제가 예전부터 언급했던 곳이니 계속 적겠습니다만, 다른 곳은 입시가 끝난 후 올리든가 할 생각입니다. 면접 후기에서는... 생각을 좀 해볼게요.
입시의 고통, 그리고 도전
제가 고양국제고를 준비하던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수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특히 10월 경에는 '내가 이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 해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 저를 고통스럽게 했죠. 한때 지원을 포기하고자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제가 지원하는 대학교 중 T 대학과 X 대학은 자소서를 빨리 받습니다. 반면 D 대학교는 다음 주 중반이 마감일 정도로 제출 기한이 넉넉하죠. 이런 거 보면 상위권 대학들이 더 빡셉니다. 진짜. 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원서 마감이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보다 하루 빠른 목요일인 건 물론, 자소서마저 그 다음날에 칼같이 마감합니다. (고려대는 자소서를 폐지했지만, 서울대와 연세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11기부터는 자소서가 사라질테니 부담을 좀 덜 수 있겠네요. 물론 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여튼, 제가 표 정리에서 실수를 하면서 T 대학 준비에서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분명 서류 마감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인데, 자기소개서 마감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였던 것이죠. 이걸 수요일에 알아버렸습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심지어 T 대학 자소서를 쓰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어요. D 대학부터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악으로 깡으로 해내고자 했습니다. 제가 교차지원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지원하는 대학 중 절반은 이공계고 절반은 인문계입니다. T 대학은 이공계 쪽에 가깝죠. 그래서 정보 선생님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정보 선생님께 받고, 첨삭은 작년 담임선생님(국어 선생님)께 받는 방식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쭤봤죠. 사실 교실에 있으면 도저히 자소서가 안 써집니다. 저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적정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저는 꽤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리지만요.
정보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선생님, 저 내일 하루 종일 입학홍보부에 있어도 되나요?" 입학홍보부는 2층에 있는 조그만 교무실로, 입학홍보부 소속 선생님 두 분(미술, 정보)께서만 계십니다. 그런데 학생 상담용(?)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자소서를 쓰고자 했습니다. 정보 선생님의 대답은 OK.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3학년 생기부와 상담 확인증을 챙겼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께서도 굉장히 의아해하시긴 하셨지만요. 사실 학생이 상담하느라 하루 종일 교무실에 있는다는 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잖아요.
여튼, 그래서 목요일과 금요일에 전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회/종례만 받고 바로 입학홍보부 교무실로 출근(...)했어요. 오히려 제가 선생님들보다 빨리 도착해서 "선생님, 오셨어요?"라고 인사를 드리는 일도 생겼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고양국제고는 진짜 학생 중심의 개방적인 학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틀동안 교무실에 박혀 있으면서 선생님들과 라디오를 같이 듣고 잡담을 하며 자소서를 작성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선생님께 자소서를 보내드리면 선생님께서 출력하셔서 같이 봐주시고, 마치 무언가 업무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교무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피곤하면 소파에 누워서 쉴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아 그런데 선생님들 계실 땐 당연히 그러면 안 됩니다. 아무도 없을 때만.
좌절의 연속
정보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참, 이웃추가 해두셔서 지금 이 글 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이틀동안 20시간 가까이 제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말 하루 종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해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사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 해주신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믿음을 저버리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저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제 바람과는 달리 자소서를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D 대학 자소서도 마찬가지긴 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걸려 고민했으니까요. 오히려 작성은 금방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카루야, 너무 고맙다. 다른 학생들 (자소서 상담/첨삭 시간)에 비해 1/10도 안 쓰는 것 같아."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선생님께서 국어 교과를 담당하시고 글을 칼같이 쓰신다는 점을 보면, 이건 엄청난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장이 좋고 서술이 풍부해도 주제가 맞지 않거나 저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 자소서는 백지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훌륭한 활동 소재와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란 말이죠. 특히 자소서에 깊이가 부족한 경우 문장에서 정말 많이 보이는 것들이 '~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정도의 문구입니다. 다 똑같죠. 이러면 '나만의 자소서'라는 타이틀이 깎이기 시작합니다. 결국엔 모든 자소서가 다 거기서 거기가 될 테니까요.
공통 문항인 2번, 3번 문항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그런데 1번, 4번 문항이 저를 유독 괴롭혔습니다. 질문을 제시하고 질문을 하게 된 이유를 기술하라. 그리고 지원 동기와 입학 후 비전을 제시하라. 타 대학의 3번 문항을 몽땅 갖다 쓰는 느낌입니다. 일단 T 대학이 저와 계열이 맞지 않고 엄청나게 상향 지원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정공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기로 했죠. 미친 척을 하고 쓰는 겁니다. 보통 면접이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자소서/생기부로 1차를 본 뒤, 특정 배수를 선발하여 면접평가를 통해 최종 선발을 진행합니다. 서류 스펙이 부족하다면 그냥 그걸로 광탈이에요. 그러기에 생기부에서 나오지 않은 나만의 독특한 개성과 장점을 풀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상담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쳐갔습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가고. 선생님 말씀이 점점 귀에 안 들리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하품을 하느라 눈물도 계속 나오고. 그런데 계속해서 노트에 필기를 하며 제 생각을 어떻게든 끄집어내고자 했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소서 글감 준비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모님께 서둘러 책 주문을 하고 점심시간에 받아온 뒤 빠르게 읽고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초인적인(?) 능력까지 발휘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제 일정은 이랬습니다.
9:00~12:50 AM: [1-4교시] 자소서 글감 준비
12:50~1:05 PM: [점심시간] 점심식사
1:05~1:15 PM: [점심시간] 부모님께 책 받은 후 속독, 핵심 내용 파악
1:15~1:50 PM: [점심시간] D 학교 자기소개서 첨삭
1:50~4:40 PM: [5-7교시] 자소서 글감 준비 및 상담, 작성 시작
4:40~4:45 PM: 종례 참석, 북카페 책 탐구, 도서관 방문 및 책 대여
4:45~6:30 PM: [8/9교시] 자기소개서 작성
6:30~6:45 PM: [저녁시간] 저녁식사
6:45~9:10 PM: [저녁시간&야자] 자기소개서 작성 및 상담
9:10~9:35 PM: [야자] T 대학 자기소개서 첨삭
9:35~1:30 AM: [야자&기숙사] 자기소개서 초안 작성 완료
정보 선생님과의 상담은 무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었고, 중간중간 자소서 담당 선생님과 첨삭을 하며 고쳐나갔습니다. 특히 수행이나 지필로도 늦게 자본 적이 없는 저로선 자소서로 새벽을 버틴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더라고요.
미술 선생님께서 T, X, Y, Z 대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작년에는 합격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고.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X 대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배 중에 X, Y 대학에 합격하신 분이 계셔서 선배님께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현실의 벽이 보이더라고요. 미술 선생님께서도 D, E 대학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X, Y, Z, T는 그냥 보너스라고 생각하라고. 정말 중요한 다른 걸 놓치고 있진 않는지 저를 굉장히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오전에만 해도 의지가 불타올랐는데, 그 힘이 모두 소진됐습니다. 더 이상 자소서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제가 이걸 마무리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어졌습니다. 그만 두고 싶어졌습니다. 목표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왠지 좀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울컥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제 분위기를 읽으셨는지 바로 당황하시며 달래주셨습니다. 면접 신경 쓰지 말고, 자소서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쓰라고. 면접은 합격 발표가 난 뒤의 일이니까, 너무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애써 웃는 척을 하며 용기를 내는 척을 했습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괴짜. 광기. 너드. 저를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한 단어들입니다. 저는 남들과 다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뭔가 파고들다보면 꼭 마치 집착을 하면서 매달리고, 전혀 상관 없는 두 분야를 엮어다가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이러한 실험과 도전정신이 저의 성장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과에서 이과로의 교차 지원은 쉽지 않습니다. 과학고/영재학교 학생들에게는 상대가 안 돼요. 계열 때문에 저희가 집니다. 저희에게 심화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계열 과목과 국제 계열 과목들이 있듯이, 과학고에서는 심화 수학 및 고급 과학, 실험 과목들을 통해 생기부를 채워나갑니다. 생기부를 보고 뽑는다면, 국제고 학생을 이공계 대학에서 받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냥 미친놈이 되기로 했습니다. 저의 광기를 살려서. 저만이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 모두에 미친 진정한 광기. 선생님께서도 "또라이처럼 보여야 승산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만큼, 제가 그 또라이가 되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궁금해서 미치겠을 정도로 만들어서 저를 부르게 하겠습니다. 후회할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요일 새벽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초안을 완성합니다.
끝을 향해 달려가다
금요일이 왔습니다. 이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들은 분명 서울대와 연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일 겁니다. 서울대는 오후 6시, 연세대는 오후 5시에 자소서가 마감되거든요. 물론 저는 이 두 학교에 지원하지 않았기에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지만, T 대학 자소서도 오후 5시에 마감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트북에 타이머를 아예 띄워놓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죠. 7시간에서 6, 5, 4, ... 숫자가 줄어갈 때마다 점점 제 마음은 불을 켜둔 양초처럼 타들어갔습니다. 중간에 북카페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소서를 쓰기도 했는데, 일반사회 선생님께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셨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도 넘버링이 되어 있죠. 급하게 쓰느라 금요일에만 세 번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래도 내용이 크게 바뀐 건 아니라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았어요. 저 '최종'이라는 글자를 넣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간의 힘들었던 기억이 싸그리 날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전 11시, 오후 3시에 걸쳐 T 대학에서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자기소개서 마감일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마침 3시쯤에 자기소개서가 완성되었기에, 원서 접수 사이트에 입력을 하고 최종 제출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나가신 사이에 잠시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겁니다. 너무 놀라가지고 바로 일어나서 봤는데...
보고싶었어요
짝선배님이 오셨습니다! 아니 우연도 무슨 이런 우연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저는 약간 벙쪄있었고, 선배는 제 근황을 물어보시며 (인스타로 봤다고 하십니다...ㅋㅋㅋㅋㅋㅋ) 대화를 건네셨습니다. 학교는 어디 쓰는지, .... 마침 자소서 작성에 무척이나 지쳐있고 외롭던 상황이라 선배님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들고 다니던 대학 지원 표와 자기소개서를 함께 드렸죠. (정말 공들여서 썼기에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ㅋㅋㅋㅋ)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 정보 선생님께서도 돌아오셔서 셋이서 교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죠. 미술 선생님께서는 출장을 나가셨습니다. 고입 시즌이라 입학홍보부 선생님들께서도 꽤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안 바쁜 선생님이 어디 계시겠...
여튼, 이렇게 저의 자소서 에피소드는 마무리됩니다.
끝난 건 아닙니다. 아직 자소서 5개가 남았어요(...) 그래도 3개는 돌려막기를 할 수 있어서, 그렇게까지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토요일이면 모든 대학의 원서 접수가 마무리됩니다. 올해 경쟁률을 반영해서 다시 표를 출력해야겠네요. 저는 수능 최저도 없고, 정시 준비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기간만 버티면 상대적으로 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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