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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u's .../Karu's Story

대학교 1학년 학생의 인턴 연구원 생활

by 카루 (Rolling Ress)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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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이 글도 굉장히 요청이 많았습니다. 구글폼은 아니고 NGL로 주제 추천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인턴 경험을 꼭 듣고 싶다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사실 모두가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던 이야기이긴 합니다. 고양국제고 후배들이든, 고국고/중앙대 동기나 선배들 모두가요. 다른 것보다 20살이 벌써 회사 일을 한다는 점에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처음 입사했던 날에도

  • "스무 살이라고? 우리 아들도 스물인데, 맨날 놀고만 있는데."
  • "스물이요? 진짜요?"

등등.. 회사에서도 제가 최연소였습니다. 저랑 나이가 가장 가까우신 분이 서른 살이니.. 10년 차이죠. 음. 그래요.


기간은 약 1달 정도로, 주 3회 6시간 근무였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 대학 재학생이기도 하고, 회사가 거주지에서 좀 멀었던 터라 (중앙대 기숙사 <-> 안양시) 주 5회 출근은 무리더라고요. 10시 출근 5시 퇴근이었는데, 아침밥 먹고 CAU 셔틀버스 타고 지하철 타서 출근했다가 다시 지하철 타고 퇴근하고 학교 가면 딱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시간은 아주 좋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했던 일을 세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니, 제가 겪은 일들, 성장했던 점을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사기업 연구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물론 가장 낮은 직급이었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드라마 때문에 회사 가면 항상 혼나고 막내는 커피타고 복사기 돌리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일단 제가 다녔던 곳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도 제 일로 상당히 바빴어요.

제가 맡았던 업무는 Transport Layer Security에 Post-Quantum Cryptography를 Porting하는 일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차세대 보안 통신 연구를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한 달, 일수로 치면 12일동안 상사님들과 무려 4번의 회의를 거치고 제가 연구했던 내용을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적용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 있을지 설명하면서요.

입사 첫날 회사에서 노트북을 줬습니다. 근데...ㅋㅋㅋㅋㅋㅋㅋ 무려 RAM이 64GB였습니다. 와 이게 맞나? 솔직히 CPU는 11세대 i7이라 큰 기대 안 했는데, 아무래도 Virtual Machine을 돌리는 분들이 많으시다보니 RAM을 큰 걸로 구비하신 듯 했습니다. 모니터도 같이 도착해서 첫 날은 모니터 설치하고, 노트북에 윈도우와 리눅스를 설치하고 (윈10이 설치되어 있어 11로 올렸습니다) 각종 툴을 구비했습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죠.

밥은 주로 옆 빌딩 구내식당에서 먹긴 했는데, 가끔씩 사수님께서 점심을 사주시곤 했습니다. 여기 일식 돈가스 맛집인데, 맛있어요. 진짜.. 너무 맛있어서 감탄했습니다. 태어나서 먹은 돈가스 중 가장 맛있는 돈가스였습니다. 등심이 아니라 뭐지? 좀 기름기가 많고 고소한 부위를 따로 선택할 수 있던데. 여튼. 돈가스 단품의 경우 10000원으로 싼 편은 아닌데, 그 값을 합니다. 지금도 저기까지 가서 먹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확실히 점심때라 그런지 직장인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리고 글 쓰면서 깨달았다. 나도 직장인이지.

물론 저렇게 놀고 먹기만 한 건 아닙니다. 제가 크게 활약한 부분도 있고, 맡은 부분에서는 대부분 일을 잘 해냈어요. 다른 분들도 모두 놀라셨을 정도로. 아무래도 SW 관련 연구직이다보니 항상 모니터만 보고 있습니다. 남이 쓴 코드를 한줄한줄 읽어보며 동작 방식을 알아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나 OQS Library는 그놈의 콜백 함수 때문에 플로우를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개발자가 키보드를 신나게 두드리는 경우는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어요. 첫 번째는 운이 아주 좋아서 머릿속에서 알고리즘이 다 맞춰지고 그게 손으로 바로 구현될 때. 두 번째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잠시 나갔을 때. (이 경우 보통 몇 분 후 자기가 작성한 코드를 통째로 지워버립니다) 실제로는 코드를 보면서 읽고 해석하는 일이 훨씬 많아요. 저도 한참 고민을 하다가 Visual Studio Code와 gdb를 연동하여 디버깅을 하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성공했습니다. IDA를 쓰려다가.. IDA 프리버전은 상용으로 못 쓰더군요. 무엇보다 이미 컴파일된 바이너리를 IDA로 뜯는 게 상당한 뻘짓이라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작업 환경과 제가 쓰던 작업 환경이 맞지 않다보니 버그가 나긴 일쑤였고요. (이건 사수님께서 기적을 발휘하여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와 이게 되네..?) 그럴 때마다 항상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근데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이긴 했습니다. 덕업일치라고 하나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누군가 돈까지 쥐어준다? 그것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리눅스 공부, C언어 공부, TLS 공부. 거기에 프로그래밍 약간. 아 근데 디버깅 하는 순간은 솔직히 좋았다곤 못하겠네요.

다만 이제 취미가 아닌 직업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인 만큼, 맡은 일에 대한 사명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쉬고 싶어도 못 쉬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그게 프로인 이유이고, 돈을 받는 이유이니까. 그리고 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만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이해한 바를 남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다음 사람이 일을 이어서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확실하게 인수인계하고. 마지막 날에도 저 둘은 제가 매우 잘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회사 인턴 생활을 끝냈으니, 이제 학부연구생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이제 취업과 대학원 진학 중 어느 것이 저에게 더 잘 맞는지 선택할 수 있겠죠. 원래 지도교수님 조언대로 인턴을 2학년에, 학부연구생을 3학년에 하려고 했으나 얼떨결에 상당히 당겨졌습니다(...). 좋은 거죠. 어린 나이에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은.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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